San Visage, 2018

자신의 스튜디오에 별도의 공간을 구축하고 그 속에 인물을 배치하여 무엇인가를 읽어 내는 작업이다. 달리 빈틈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인물사진임에도 인물 속의 빈 곳을 포착하려는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매우 독자적이고도 꽉 찬 어떤 인물인데 어딘가 있을 그 인물 속 ‘텅 빔’이 오석훈의 피사체 였을까? 왠지 그의 삶에는 스튜디오를 넘어서는 방랑의 여정이 묻어 있는 것 같고, 스튜디오 내부에 구축한 별도의 촬영공간이 매 순간 스튜디오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른 세상 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의 은유인 것 같다. 작가 자신이 좋아한다는 사막이나 바다의 휑하고도 황량한 이미지, 자유를 열망하는 고독의 이미지가 겹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우거나 교환할 수 없는 고유함을 지닌 인물 사진을 찍으면서, 그 속에서 ‘얼굴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작가 시도는 어찌 보면 모순이다. 인물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얼굴 없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말이다. 도구와 작품간의 관계에 대한 하이데거의 성찰에서 보듯 그릇을 빚는다는 것은 결국 텅 빈 공간을 빚는 것이고 텅 빔으로 인해 그릇이 그릇으로 유지 되는, 이 팽팽한 모순 관계의 개입이 기물의 고유함을 만든다. 아이러니 한 것은, 텅 빔으로 인해 비로소 그릇다운 기능의 발생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기물이 아니라 인물의 경우에 이와 같은 점을 대비해 본다면 우리는 어떤 긴장감과 감동 앞에 처하게 되는 것일까? 오석훈의 사진을 분류해보자면 우연이나 자연스러움을 허용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상당한 구성력을 투입해야하는 매우 조형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조형은 단조롭고 매우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인위적인 구성으로서 한 인물에게서 솟아나는 고유의 힘이랄까, 에너지의 뉘앙스에 관객을 집중시킨다. 그의 조형적인 감각이 향하는 것은 우리 인간성의 근원 풍경, 무한한 가능성에서 단 하나의 고유함이 솟아나는 막막하지만 꽉 찬 감각의 지대가 아닐까 싶다.

Previous
Previous

Milano

Next
Next

Les Ailes